[인터뷰]무용수 원원명 “세상이 험해질수록...우린 또 다른 희망을 필요로 합니다."

기사승인 2016.10.03  16: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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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는 아티스트’ “모두들 춤 좀 그만 추었으면 좋겠어요“

[정컬처=정다훈 기자]

객석의 동공을 커지게 하기 보단, 단단하게 가로막힌 가슴의 빗장을 한 꺼풀 벗겨낸 현대무용이었다. 사그러드는 열정에 걱정하면서도 심하게 요동치는 삶의 한 복판에 발을 담근다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른다.

28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제19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초청작, 카롤린 칼송 무용단의 <단편들>중 원원명이 출연한 솔로 ‘타오르는(burning)’는 강렬한 인상과 쉽게 잊기 힘든 에너지 충만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무용수 원원명은 "몸의 근본과 존엄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일대 일로 만난 원원명과의 대화는 무용보다는 ‘연극’ 쪽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워, ‘원초적인 몸의 언어 즉 ‘춤’이 마지막에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로 나아갔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는 아티스트’가 무용수가 소비되는 시대에 던진 돌직구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세상이 험해질수록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춤‘이 필요하다”

극단 목화의 오태석 연출이 ‘인간은 ‘춤’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원원명은 “세상이 험해질수록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용수였다.

서울예대 현대무용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현대무용실기과를 졸업한 원원명은 그동안 프랑스 파리의 카롤린 칼송 무용단(Carolyn Carlson dance company  / Paris(Fr)), 벨기에 브뤼셀의 빔 반데케이버스가 이끄는 울티마 베즈(Wim Vandekeybus /Ultima vez  Brussels(Be)), 캐나다 몬트리올의 마리 쉬나르 무용단(Marie chouinard Company / Montreal(ca)) 과 작업해왔다.

카롤린 칼송 무용단은 상주 무용수를 두지 않는 노마드식 무용단이다. 칼송의 철학과 통하는 구석이 많은 그에 따르면, “카롤린은 바쁜 와중에서 주변의 모든 이들을 챙기는 마음 씀씀이가 따뜻한 사람”이다.

“카롤린의 창작력은 날카롭고 깊은 바다 같아요. 작업이 시작되면 엄청난 집중력과 창작력이 발동됩니다. 항상 수십 장의 노트와, 드로잉, 생각등을 적어내려 간 종이들이 가득해요. 공연 시작 1분 전까지도 그녀의 창작이 지속될 정도로 끊임없이 창작열에 불타는 분이죠. 함께하는 무용수들이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도 알 정도로 늘 애정을 가지고 무용수들을 지켜봐요.”

어린 시절 무용 키즈라기보다는 ‘연극 키즈’에 가까웠던 원씨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 대학로를 오가며 연극지망생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90년대 연극지망생 생활을 하면서 발레, 재즈무용, 현대무용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간 그는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몸을 훈련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접하게 된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흥미를 느낀 그는 서울예술대학 현대무용과에 진학하며 좀 더 몸의 언어들을 찾게 됐다고 했다.

“그저 춤 추는 게 좋았어요” 라고 과거를 돌아본 원씨는 “연극보다 ‘춤’이 더 법위가 넓다고 생각했어요. 연극하는 친국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무용하는 친구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 나가다가 중요한 건 바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 아닐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무엇을 하든지 저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 움직임으로써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 제19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초청작, 카롤린 칼송 무용단의 <단편들>중 '버닝'의 한 장면, Florent Drillon/Adami, Cie Carolyn Carlson

■ 몸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는 아티스트’를 만나다

이번 인터뷰가 특별한 점은 홍보사가 인터뷰를 추진한 게 아닌, 무용수가 기자들에게 직접 이메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콜을 보낸 점. 몇 차례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할 말이 별로 없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고 전한 원씨는 이번에는 직접 발벗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메일에서 인상적인 문구는 이것이었다. “저는 그저 평범한 무용수 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다른 이들 못지않으리라 생각 합니다.” 그렇게 그와의 만남은 이메일을 몇 차례 주고 받은 후 특별하게 성사됐다.

“‘처음엔 과연 내가 기자들을 만나 할 말이 있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그 동안 읽었던 여러 무용 관련 인터뷰나 글 속에서 만났던 몇몇 분들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우습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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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애호가라면 그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진 몰라도, 그 외의 활동에 대해선 언론은 물론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제 입장은 SNS의 자제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적인 방법의 삶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죠. 면 대 면이든, 이러한 소셜 네트워크는 직접적인 인간관계의 만남을 가상 공간 속 만남과 관계로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바로 춤의 변형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거든요. 물론 현재의 이 흐름도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런 첨단 기술 시대에는, 모든 관계들이 보이지 않는 걸로 연결이 되니, 저를 그런 수단을 통해 어필하면 더 좋을까요? 페이스 북, 트위터 이런 SNS가 없어도 살아요. 또 살 만하니까요. 지금 제가 그것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달라지길 바라지도 않아요. 무대는 공연을 통해 보는 것 아닐까요?. 무용수 역시 공연을 통해 보여주는 거죠.”

   
▲ 무용수 원원명은 "수백, 수천명의 환호성이 아닌, 예술가들의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봐주는 이들이 있다면 예술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무용의 대중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눈”

무용수인 그가 받았던 질문 중 당황했던 질문 한 가지는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무용수들이 보다 노출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였다.

“무용이 대중화되어야 한다, 즉 많은 이들에게 무용을 알려야 한다며 방송 출연을 권유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꼭 매스컴을 타야 대중화 될 수 있나요? 그건 조금 아닌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방송에 나와서 ‘무용도 보러오세요’ 라고 홍보식으로 말하는 데, 말 하는 것과 무용하는 건 달라요. 또 무용수 스스로 춤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더 나아가 대중들이 무용수들의 춤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춤으로 해결 될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문 같지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무용 애호가의 층이 더 넓어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

“무용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있어요. 일반 관객들이 무용을 보러 갈 이유요? 글쎄요. 그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면 좋겠지만, 굳이 ‘꼭, 무조건 보러와야 합니다’ 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일반 관객들이 안 보러오면 뭐 어때요? ”

그의 입장은 명확했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관객을 생각하고 만들면 벌써 가위표 하나가 그어진거죠. ”라고 말한 원씨는 “중요한 건 만드는 입장에서 뭘 만드느냐?, 제대로 알고 만드느냐”라고 했다.

“티켓이 얼마나 나가고, 사람들 입에 얼마나 오르내리느냐가 결국 경제적인 부분과 연결된다는 걸 잘 알아요. 그걸로 인해 투어를 다니고, 그가 속한 단체든, 개인이 유명해지는 게 수순이죠. ”

“천석 객석에 단 다섯 명이 앉아있더라도, 이 작품이 예술작품인지 아닌지 볼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진 분이 있다면 충분하다고 봐요. 여기서 말하는 ‘좋은 눈’ 이라는 것은 바른 것을 볼 수 있고, 눈 혹은 머리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수백, 수천명의 환호성이 아닌, 예술가들의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봐주는 이들이 있다면 예술은 발전할 수 있어요. ”

우리나라는 어느 한쪽에 쏠림 현상이 심한 점도 사실. 유명 콩쿠르에서 상을 타오거나, 유명 안무가와의 작업이 아닌 이상 언론과 대중은 쉽게 관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 무용계만 봐도 중간이 없고, 꼭대기 탑 자리에 있는 분과 바닥에 있는 분이 대체로 많은 것 같아요. 조금만 잘하면 치켜세워주고,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면 전혀 쳐다도 보지 않아요. 머리와 발 사이가 너무 멀죠. 중간이 두껍고 튼튼해야 하는데 얇은 점이 안타까워요. ”

그는 전업 무용수로 살아가기 힘든 국내 현실도 꼬집었다. “무용수가 창작 작업을  하려면 관객, 혹은 지원금을 신경 써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어떤 한 친구가 확고한 철학으로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면 뭔가가 있는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속적인 서포트가 아직 정착이 안 돼 있다고 봅니다. 젊은 안무가들이 좀 더 집중하고 지속적으로 작업할수 있는 여건이 절실한데도 말이죠. ‘왜 돈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하면서 고생할까?’라는 시선을 보내기 일쑤죠.

그렇게 되면 그 무용수와 안무가는 여기서 치여서 힘들고 저기서 치여서 좌절해요. 그러다 딴 일을 찾아요, 깊이 있게 작업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어려워요. 완벽한 환경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서포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변만 봐도 이런 케이스가 얼마나 많았어요. 그렇게 되면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이 사라지게 되잖아요. 그 점이 마음이 아파요."

   
원원명은 "춤이 안 되면, 사는 데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과연 무용으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이리 저리 치인 젊은 친구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무용(혹은 춤)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

원명씨는 명쾌한 답을 내 놓았다. “춤을 통해 하고 싶은 뭔가가 안 된다!? 그렇다면 춤이 아닌 다른 것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그렇다고 무용 일이 아닌 다른 직업을 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사유의 폭을 넓히라는 의미다.
 
“무용하는 친구가 작품이 잘 안된다고 말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위해선 지원금이 더 필요하고, 더 좋은 무용수를 써야 하고, 더 좋은 극장을 잡아 투어 공연까지 염두해 두고 있다고 해요. 그럼 애초 지원금만 두둑하면 이 작품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라는 뜻이죠.

춤이 안 되면, 사는 데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해요. 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보고, 어디를 가고, 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동안 내가 뭘 잃어버렸지? 등 그것을 공부해봐야 해요. 오히려 이런 것들이 작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때가 있어요. “

흔히 배우들에게 “무대 위 모습과 무대 밖 모습이 같아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결국 그 배우의 모습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투영이 되기 때문이다. 원명씨 역시 “내가 의도적으로 날 드러내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모습이 그냥 내 모습으로 드러났음 한다”고 말했다.

“희노애락 경험이 많은 공연자일수록 무대는 넓고, 깊어지고 재미있어져요”

“무대 위와 무대 밖 내 모습이요? 글쎄요. '자연' 스러운 원원명 그대로겠죠.내가  태어나면서 가진 몸, 몸에 있는 상처, 좋고 나쁜 기억들, 경험했던 수 많은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거잖아요. 내가 어떻게 말하고, 어떤 옷들을 걸치고, 어떤 생각들을 하고. 웃고 화를 내는 이러한 모든 것이 저 아니겠어요. 그것이 바로 무대에 옮겨진다 생각해요.”

그래서 그럴까? 그는 스스로 “어떤 무용수” 혹은 “이름만 대면 바로 떠오르는 대표작”이 없다고 했다. 10년이 넘게 무용수 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본인의 이름을 내건 안무작을 선보이지도 않았다. 벨기에 에선 무용수들도 함께 이 작품을 만들어갔다는 의미로 댄서 대신 콜라보레이션이란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국내에선 안무가와 무용수를 구분해서 쓴다. 그는 “안무가로서 자질이 있어서 안무를 하느냐? 그게 관건이다” 며 “아직까진 안무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거침 없는 발언도 이어졌다. “솔직히 말해 안무가란 말보다는 ‘입시 전문 학원 강사’란 말이 정직하고 좋죠! 안무를 배운다고 될까요? 안무하는 방법을 열어주면 다 안무를 짤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안무 실력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능력 있는 친구들이 30대에 재능이 멈춰요. 왜 그런지? 생각해볼 만한 것 같아요.”

28일 공연을 끝낸 그는 10월 12일 출국 전까지 국내에 머무르며 워크숍으로 국내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 부산 경성대, 신라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 및 실기과 워크샵이 예정 돼 있다.

“같이 서로 잘 놀다 같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한 원명씨는 “워크숍을 통해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서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전했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한 방향으로 제시하며,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해요. 제가 무엇을 가르치고, 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안 되지만 가이드 역할을 하길 바래요. ”

몇몇 이름만 되면 무용계에서 알만한 젊은 친구들을 애정 있게 바라보는 선배의 한마디도 이어졌다.

“20대부터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상도 많이 타고 유명세를 치룬 친구들이 있어요. 다 좋아요. 다들 활발한 활동과 대중화로 그들의 생계를 해결하고, ‘무용’의 인지도를 높이구요.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다들 보고있고 다들 알고 있는데...제가 ‘이상하지 않니?’ 라고 말하면, 어떤 점이 이상한 지 모르는 경우, 모르는 척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현실에 눈을 감아버린 장님이 되는 거죠.”

   
▲ 제19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초청작, 카롤린 칼송 무용단의 <단편들>중 '버닝'의 서울 공연 한 장면

■ “정말 춤을 추고 싶으면... 모두들 춤 좀 그만 추었으면 좋겠어요“

세상 모든 것에는 눈과 귀를 닫고 ‘춤’에만 매달리는 급류에 휩쓸리고 있는 후배들을 향한 그의 한 마디는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저의 작은 소견은,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춤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춤을 너무 소비하는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 마음, 영적으로 너무 자신들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있는 일들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춤추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후배들만이 아니고 한국 무용인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할 내용입니다.”

#무용수가 소비되는 시대에 던진 돌직구 

누구나 인생의 꽃을 피고 싶어한다. 하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선 좋은 땅을 고르고, 튼실한 씨앗을 심고, 사랑의 손길로 늘 지켜보고 물을 줘야 한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못 견디는 이들은 바로 꽃이 피길 기대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의 순환을 못 기다리고, ‘봄 여름’, 또 ‘봄 여름’만 오길 기대해요. 꽃만 피고 싶어하는 자들의 마음과 비슷하죠. 지금 사회가 무용수를 바라보는 게 딱 그 시각 인 것 같아요.”

“무용수로써의 존재감이 없는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무용수)의 잘못이기도 하겠죠. 너무 싸게 ‘몸’을 대하는 것 같아요. ‘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이 시기 전 인류 모두에게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TV를 틀어보세요, 신문을 펼쳐보세요. 인터넷에 들어가 보세요. 사건 사고로 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근본과 존엄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그러한 중요한 ‘몸’을 빌려 표현하는 세계의 무용수들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보단 매번 큰 무대에 서서 객석의 환호를 받고 싶어 해요. 거기서 살아남은 이들만 살아나는 거죠. 우리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희망이 필요한 시대 아닌가요? 우린 또 다른 희망을 필요로 합니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글쟁이들이 매일 매일 뭔가를 끄적거리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놓듯, 무용수인 그는 마음의 움직임을 ‘몸짓’이란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배고픈 게 좋은 게 같아요. (유명세를 치르고)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쓸 데 없는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저는 다른 이들처럼 ‘춤 없으면 못살아요’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그런가요 그들이? 정말 그들이 춤추는 이유가 춤이 좋아서 인가요? 아니면 다는 생각들이 있는지 누가 알아요. ”

“춤은 삶의 한 부분이죠. 전 춤이 없어도 살아요. 팔다리 하나 없어도 살 수 있듯이 ‘춤’이 없어도 살잖아요. 전 춤이 좋아요. 그런 춤이 없어도 살고요. 곧 무대에서 춤을 추지만 그 이유는 그저 춤을 추어야 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춤, 그 시간이 저의 삶에 한부분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저 춤이 좋아요. 그뿐이에요.”
 
거침없이 말을 내 뱉는 그였지만, ‘꿈’에 대해서만은 말을 아꼈다.

“글쎄요. 솔직히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무척 힘드네요. 지금으로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내 가족이, 내친 구들이, 내 이웃이, 내 이웃나라들, 그리고 이 모든 ‘인류’가 말 입이다.

꿈꾸며 산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매일 매일 그저 살아가고 있어요. 매일 매일 춤을 추는 것 처럼요.“

[사진=정컬처, 서울세계무용축제, Florent Drillon/Adami, Cie Carolyn Carl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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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훈 기자 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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